한나라당은 건강에 도움이 된다.

왜냐구? 한나라당은 나의 혈액순환에 그나큰 도움을 주거든. 한나라당이 있는 한 고기를 아무리 많이 먹어도 혈행불순에 걸릴 일은 없을 듯.

한나라 ‘대북 삐라살포’ 지원법안 추진

...아놔... 뒷골 땡기네.

삐라를 뿌리는 데에 대한 찬반은 둘째 치고, 이런걸 대놓고 하겠다니 제정신인가. 

북한의 붕괴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면, 북한의 붕괴를 유도하기 위한 공작을 하는 데 대해서까지 비난할 생각은 없다. 나야 뭐, 북한이 붕괴해서 남한에 좋을 게 없다는 입장이긴 하지만, 그거야 어디까지나 내 개인취향 아니겠는가. 북한이 붕괴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이를 위한 공작을 하고 있다면 비판은 할 수 있을 지언정 비난은 어렵다. 말과 행동이 일치한다는 점 만큼은 인정해 주어야 할 터이니. 취향이나 입장이 다르다고 비난을 퍼붓는건 내 취향이 아니다.

그런데 말이지... 당연히 이런 공작은 물밑에서 조용히 하는게 상식 아닌가? 아니, 대놓고 "망해라~!"라고 나라에서 선언하겠다니 이건 도대체 뭔가. 이번 법안은 북한 인권상황 개선에 전혀 도움 안되고, 또한 북한 붕괴 유도에도 전혀 도움 안된다. 한나라당의 이번 행동은 북한에게 쓸만한 협상거리를 던져주는 이적행위에 다름아니다. 아니, 농담이 아니라 정말루. 북한은 막장이긴 하지만 바보이기는 커녕 영악하기 짝이 없는 놈들인데, 이런 좋은 떡밥을 그냥 흘려보낼 것 같지는 않단 말이지.

...하기야 어차피 북한이랑 협상을 벌일 생각이 없으니 북한에 팻감 수백개를 가져다 바친들 문제될 거 없긴 하겠다만.

by 감자부침개 | 2008/12/08 13:18 |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 | 트랙백 | 덧글(2)

모르는게 약.

내일...이 아니라 이젠 오늘이구만. 오늘 시험보는 과목을 위해 공부를 하던 도중.... 재미있는 구절을 발견했다.

(전략)
흑해 북안으로 돌아온 스키타이는 기원전 6세기 말 페르시아 제국의 공격을 성공적으로 막아냄으로써 전성기를 구가하게 된다. 다리우스 대제는 80만명의 대군을 이끌고 스키타이를 잡기 위해서 초원을 헤맸으나 종적을 찾을 수 없게 되었다. 절망에 빠진 그는 스키타이인들에게 사람을 보내 비겁하게 도망만 다니지 말고 정정당당하게 나와서 싸우자는 전갈을 보냈다. 그러나 그에게 돌아온 것은 “우리는 도망다니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는 생활방식이 원래 그렇다”는 조롱 섞인 답신뿐이었다. 식량이 고갈된 페르시아군은 퇴각할 수밖에없었다. 스키타이는 초원에 물이 귀하므로 그들이 물이 있는 곳을 따라 퇴각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맹추격을 시작했으나, 페르시아인들은 초원의 지리에 어두워 물도 없는 엉뚱한 길로가는 바람에 전멸 위기에서 벗어나 구사일생으로 귀환할 수 있었다고 한다.
(후략)

자고로 전투에서 가장 큰 피해가 발생하는 건 퇴각할때다. 다리우스에게 물을 볼줄 아는 사람이 붙어있었다면 한고조 유방 꼴을 당하지 않았을까나.

by 감자부침개 | 2008/12/08 00:04 |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 | 트랙백 | 덧글(0)

잃어버린 10년을 되찾겠다더니 한 30년은 되찾은 모양이다.

사상이 의심스럽다는 이유로 고발당했습니다

요약 : 북한 까면 북한찬양고무죄.

그나저나 한국  법률체계도 은근히 막장인 점이 좀 있다. 고발들어오면 무조건 출두조사? 서면소명이라든지 하는 기회는 없는건가? 이건 상대방을 괴롭히고 싶을때 일단 고발부터 넣으라는 소리잖아.

by 감자부침개 | 2008/12/05 08:47 |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 | 트랙백 | 덧글(0)

쥐돌이님, 사망하시다

한번 나를 붙잡으면 적어도 세시간 동안은 나를 놓아주지 않으시는 나의 컴퓨터님.
사람을 그리워하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연세가 좀 많으시다.
연세가 너무 많으셔서 그런지 가끔... 아니 자주 정신줄을 놓으신다.
그래도 손발은 멀쩡했건만... 그제 저녁부터 수전증 증세를 보인다. 마우스 포인터가 덜덜 거리면서 원하는 곳으로 가질 않는다.
그러더니 어제아침 드디어 컴퓨터님이 기르시던 쥐돌이가 꿈쩍도 하지 않는 지경에 이르렀다. 굴려보고 뒤집어보고 발로 차보아도(!) 도무지 반응이 없다. 마우스 포인터가 뜨는 걸로 봐서 아직 영혼이 육신을 떠나지는 않은 모양이지만... 사실상 뇌사상태라고 보아야 하리.

오늘 새로운 쥐돌이를 구해서 놓아드려 보기는 하겠지만... 쥐돌이 문제가 아닐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 


덧. 이게 IT 밸리에 보내는게 맞는지는 모르겠는데, 한번 보내본다. 뭐 이러면서 블로그질을 배우는거지, 뭐.

by 감자부침개 | 2008/12/04 13:11 |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 | 트랙백 | 덧글(0)

스기야마의 몽골 세계제국 서평

백업용, 백업용.


1. 스기야마가 들려주는 몽골 이야기


 이 책은 몽골 세계제국이라는 제목에 걸맞게, 세계제국으로서의 몽골의 성립과 팽창, 그리고 와해를 서술한 책이다. 중요한 것은 스기야마는 몽골을 몽골민족의 역사 혹은 원왕조의 중화역사로 파악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사적인 시각에서 몽골을 조망하려고 노력하고 있다는 점이다.

 다만 몽고인들 스스로는 그다지 많은 자료를 남기지 않았기에 상당부분은 추측에 의지하고 있다는 점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하지만 고대사 연구라는게 그런 것 아니겠는가. 흔히 말하기를 근현대사 연구는 자료의 홍수 속에서 옥석을 가려내는 작업이라고 한다면 고대사는 없는 자료들을 이리 저리 끼워 맞춰 사실을 실토하도록 다그치는 작업이라고들 한다. 몽골은 고대라고 하기엔 천년도 채 지나지 않은 가까운 과거의 역사이긴 하지만, 몽골이 문서 행정이 발달한 제국임에도 불구하고 현존하는 사료가 많지 않기에 스기야마로서도 꽤나 애를 먹은 모양이다. 아마도 몽골을 연구하는 사람들은 고대사를 연구하는 기분이리라.

 스기야마는 훌레구 울루스에서 집필한 집사(集史)를 소개하면서 말문을 연다. 몽골의 출발부터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굳이 집사를 먼저 소개하는 까닭은 분명하다. 집사는 분명 훌레구 울루스의 입장을 반영하는 책이다. 마찬가지로 스기야마가 사는 일본을 포함한 동아시아권에서 바라보는 몽골은 명이 쓴 원사에 입각하여 바라보는 경향이 있다. 스기야마가 굳이 일본의 독자들(스기야마가 일본 독자들을 대상으로 이 책을 쓴 흔적이 곳곳에서 눈에 밟힌다)이 익숙할 원사 내지는 비사 이야기부터 꺼내지 않고 집사 이야기를 먼저 꺼낸 까닭은 결국 일본인들이 익숙한 한자 자료는 원 그 자체를 그린 것이 아니라 한자를 쓰는 사람들 즉 한족(漢族)이 바라본 원을 그리고 있을 뿐이라는 점을 명확히 인지시키고 싶어서일 터다.

 스기야마는 한족이 그린 몽골, 이란사람이 그린 몽골, 유럽이 그린 몽골이 아니라 몽골 그 자체를 그려내고 싶었던 것이다.

 그가 그려낸 몽골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잿빛 이리 테무진은 갖은 고생을 겪은 끝에 기존의 권력자 케레이트 옹칸을 물리치고 몽골고원 동부지역의 패자가 된다. 이로부터 몽골의 역사는 시작된다. 유명한 칭기스 칸이라는 칭호는 좀 더 뒤에 얻게 되지만, 사실상 정복군주로서의 테무진의 일생은 케레이트를 누른 뒤부터라고 보아도 될 것이다. 몽골의 국회라고 할 수 있는 쿠릴타이에서 테무진을 칭기스 칸으로 추대하고 하나의 울루스를 이룬 몽골은 이후 끊임없는 팽창을 시작한다. 몽골의 작전은 동서 양방향으로 진행되는데 일단 금을 제압하여 막대한 물자 보급기지를 얻는다. 한편 서방으로의 원정은 중앙아시아를 비롯하여 이란, 킵차크 지역에 이르는 광대한 지역에 몽골의 힘이 미치도록 한다.

 이 1차 팽창은 칭기스 칸의 죽음으로 잠시 소강상태를 맞이하지만, 우구데이의 시대를 맞이하여 몽골은 다시 팽창하기 시작한다. 이때의 팽창은 이전 칭기스칸의 팽창때와는 약간 다른 성격을 가지는데, 우구데이의 시대에 이르면 어느 정도 세계전략이라고 할 만한 것이 보이기 시작한다. 테무진에게 있어서 원정이 휘하 울루스에게 재화를 나누어주기 위한 것이었다면 우구데이의 원정은 세계를 얻겠다는 야심이 엿보인다. 우구데이 역시 동서 양방향으로 원정을 하는데, 그 결과 금은 확실한 멸망을 맞이하여 화북지역의 경제력은 몽골의 소유가 된다. 그리고 서방 원정의 결과로 주치 울루스가 자리 잡기 시작한다. 보다 명확하게는 주치 울루스는 징기스 칸때 이미 그 싹을 틔우고 있긴 하지만 테무진 생전에는 주치 울루스에게 있어서 울루스의 기반은 몽골고원이지 킵차크 일대는 아니었던 모양이다.

 우구데이의 죽음 이후 권력을 놓고 둘러싼 싸움으로 잠시 혼란을 맞이한 몽골은 쿠빌라이라는 경영자를 만남으로서 세계 울루스로서 거듭난다. 그 이전 몽케의 이야기를 잠깐 해야 하는데, 선대 카한이었던 몽케는 동방원정은 쿠빌라이에게 맞기고 서방은 훌레구에게 맞겼다. 결과적으로 쿠빌라이는 남송을 멸하여 중원을 확실히 몽골 울루스로 들어오게 만들었고, 훌레구는 이슬람의 두 거인 이스마일파와 압바스조를 격멸하여 이슬람 세계의 동부를 몽골 울루스 안으로 편입한다. 이때 편입된 이란지방이 훌레구 울루스를 이루게 된다.

 테무진 시대의 몽골 울루스는 말하자면 원정을 위한 군사공동체로서 전리품이라는 이해관계에 의해 묶여진 일종의 연합체이다. 스기야마는 풀냄새 나는 제국이라고 표현했는데, 사실 솔직하게 말하자면 중국식 황제 체제에 익숙한 한국 사람인 내가 보기에는 제국이라는 말도 아까울 정도다. 칭기스 칸은 황제라기보다는 총사령관에 가까운 인상이다.

 우구데이 카한1)에 이르러 몽골 울루스는 여러 울루스의 연합체가 아니라 본격적으로 하나의 울루스로서 기능하기 시작하는 인상을 준다. 칭기스 칸에 의해 하나로 묶여진 울루스가 어떤 힘을 발휘하는지 경험한 몽골인들도 우구데이 대(代)에는 몽골 울루스에 참가한 타타르인, 나이만인 등으로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예케 몽골 울루스의 일원으로 행동하는 모습이 분명히 보이고 있다.

 쿠빌라이가 중요한 것은 남송을 제압한 것 때문이 아니다. 쿠빌라이는 제국을 말위에서 통치하지 않았다. 쿠빌라이는 몽골 울루스의 시스템을 만들어내었고, 그의 승리는 대부분 시스템에 의한 승리이다. 이것은 마치 과거 로마 제국을 연상케 하는 대목이다. 쿠빌라이가 로마를 알았을 것 같지는 않지만, 거대한 조직을 운영하기 위해서는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것은 어디를 가나 통하는 진리다. 쿠빌라이에 의해 예케 몽골 울루스(대 몽골 공동체2))는 예케 위안 몽골 울루스(대원제국)으로 만들어지게 된다. 흔히 몽골제국 하면 떠오르는 두가지 이미지는 정복국가 그리고 교역국가 인데 교역국가라는 이미지는 쿠빌라이에 의해 만들어졌다고 보아도 될 것이다. 쿠빌라이에 이르러 내륙 교역망은 물론이요 바다를 통한 교역망도 확립되기에 이른다. 초원의 유목민인 몽골에 의해 초원길이 통합된 것이야 그렇다고 치더라도, 물만 만나면 주눅이 들던 몽골 사람들에 의해서 안정된 바닷길이 열렸다는 사실은 역사의 아이러니라고 할 수 밖에는 없다.

 그러나 대원제국은 너무나도 덩치가 컸다. 게다가 쿠빌라이는 몽골고원이 아닌 동부를 기반으로 한 카한이었다. 칭기스 칸 이래 몽골 울루스는 중앙의 직속부, 좌익(동쪽)의 형제들의 울루스 그리고 우익(서쪽)의 여러 아들 울루스로 이루어진다. 중앙은 물론 몽골고원이다. 이 원칙은 쿠빌라이에 의해 사실상 깨진다. 좌익 울루스가 중심이 된 것이다. 이후 몽골은 다극 체제로 들어선다. 확실하게 다극체제가 정립된 것은 보다 후대의 일이지만, 쿠빌라이에 이르러 주치 울루스와 훌레구 울루스는 이미 형성되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칭기스 칸의 여러 아들 중 차가타이와 우구데이의 울루스가 자리잡았던 중앙아시아는 확실한 패권이 정립되기까지는 많은 부침을 겪은 후에 차가타이 울루스가 장악한다.

 사실 쿠빌라이 이후의 몽골은 흥미있는 이야깃거리는 별로 없다. 거대한 제국이 흔히 보여주는 암투 끝에 제국이 활력을 잃고 마침내는 붕괴되어 가는 과정으로 요약할 수 있다. 특기할 만한 것이라면 카이샨의 존재와 그의 어머니 다기의 존재이다. 카이샨은 칭기스 칸 이래 처음으로 몽골 전체 쿠릴타이의 추대를 받을 뻔 했다. 게다가 유목민적인 관용, 즉 사여에 매우 적극적이었던 사람이었다. 그의 재물 및 관직 살포는 제국에 큰 부담이 되었음은 사실이지만, 각지로 멀리 퍼져나간 몽골 울루스를 다시 하나로 묶어낼 수 있는 가능성이 있었음 역시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카이샨은 단명했고, 몽골 울루스는 다시는 전체를 아우를만한 카한을 맞이할 수 없었다. 그런데 정작 그 카이샨의 어머니인 다기는 자신의 권력욕으로 인해 예케 위안 몽골 울루스의 수명을 단축시켰다. 이 역시 역사의 아이러니이다. 얼마 안가서 예케 위안 몽골 울루스는 내외로 밀어닥친 장애를 딛지 못하고 예케 위안이라는 이름을 떼어버려도 할 말 없는 처지로 물러나고 만다.

 몽골 역사의 대략적인 이야기는 이정도이다. 그러나 스기야마는 단순히 옛날옛적 몽골이 이러이러한 역사를 만들었다라는 것 보다 더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해 주고 있다. 몽골이 유럽에 비친 공포의 군대로서의 이미지라든지, 학살․파괴는 의도적으로 과장되었다든지 하는 이야기는 제쳐두자. 이런 이야기는 스기야마 이전에도 숱하게 들어왔던 이야기니까. 그러나 원나라밖에 모르던 나로서는 재미있기 짝이 없는 이야기를 스기야마는 들려주고 있다.


2. 늙은이의 젊은 나라


 전국 칠웅을 하나로 통합하여 중국의 기틀을 마련한 진왕 정(통칭 진시황제)가 통일전쟁을 시작한 것은 나이 서른 때의 일이다. 그로부터 단 9년 만에 전국칠웅을 제패한다. 중원이라는 세계를 건설하고 황제체제를 만들어낸 사람은 한마디로 젊은 사람이었다. 유럽의 대표적인 정복군주라고 할 수 있는 알렉산드로스는 마케도니아의 왕위에 오른 것이 스물이라는 새파랗게 젊은 나이였다. 그리고 그를 유명하게 해 준 동방원정을 시작한 것은 겨우 스물 셋이며 서른하나쯤에는 이미 북인도까지 당도해 있었다. 근대 유럽을 만든 사람 중 하나인 나폴레옹이 군대를 이끌고 알프스를 넘은 것은 스물여덟이고 나이 서른에 프랑스 정권을 장악하여 마흔이 되기 전에 유럽을 제패한다. 멀리 갈 것도 없이 한국에서 정복군주로 이름 높은 담덕3)이 고구려 왕위에 오른 것은 요즘 같으면 술도 못 마시는 나이인 열여덟 살의 일인데, 바로 다음해 백제에 대한 공격을 단행한다. 서른아홉에 죽었으니 그의 위업은 20년도 안 되는 세월에 이루어진 셈이다. 이들 정복군주들의 특징은 젊다는 것이다. 아마도 젊은 패기가 없다면 대규모 정복을 추진할 수는 없었으리라.

 그러나 몽골은 좀 특이하다. 당장 몽골 울루스의 시조이자 가장 강력한 정복군주였던 테무진 부터가 마흔쯤 되어서야 역사 전면에 등장하기 시작한다. 웬만한 영웅들은 이미 은퇴했을 나이에 데뷔한 셈이다. 그 이후로도 줄줄이 마흔이 넘은 카한이 등극한다. 가혹한 환경속에서 몽골인들은 일찍 늙는 경향이 있다. 당시 기준으로도 마흔은 이미 많은 나이지만 특히 몽골인이라면 거의 늙은이라고 해도 좋으리라. 말 그대로 노인이 통치하는 제국인 셈이다.

 이렇게 된 데에는 카한이 갖는 위치에 있다. 한국인이 익숙한 중국식 황제체제에서 황제의 자격은 천명을 받았는가에 따라 결정되는데, 천명을 받았는가를 가름하는 조건은 결국 중원을 평정하였는가이다4). 그런데, 이 천명은 혈통을 따라 전해질 수 있다. 때문에 황족은 아무리 어린 나이더라도 황제가 될 수 있다. 설령 갓 젖을 뗀 아기일지라도 선제(先帝)로부터 천명을 이어받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몽골 울루스의 카한은 기본적으로 조정자이다. 한마디로 추대를 받은 의장에 가깝다. 아무리 고귀한 피를 가진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연륜이 없는 자에게는 조정자의 역할을 맡길 수 없는 노릇이다.

 그 결과 노인이 통치하는 집단이 되어버렸지만, 되려 몽골 울루스는 밖에서 보기엔 패기에 넘치는 집단으로 보인다. 이는 카한이 몽골 내부의 갈등을 잘 조율하였기에 가능한 일이다. 늙었기에 집단 내의 갈등을 조정할 수 있었고 그 결과 힘을 외부로 효율적으로 투사할수 있었다. 그 결과 집단은 패기에 넘치는 집단이 되었다. 게다가 연륜이 있는 몽골의 카한은 젊은 정복자가 흔히 빠지기 쉬운 무모한 도전으로의 유혹 혹은 외부를 바라본 나머지 내부에 소홀해 지는 유혹에 빠지지 않았다. 알렉산드로스 제국이나 진 제국 등 단기간에 팽창한 제국은 또 금방 무너지는 경향을 보인다. 그러나 몽골은 유례없이 빠른 속도로 팽창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수세대동안 존속했다. 늙은 카한들은 과욕을 부리지 않았고 정복만이 능사가 아님을 알았기에 가능한 일이다. 꽤나 흥미로운 현상이다. 흔히 몽골의 이미지는 젊은 정복국가인데 정작 젊은 국가를 만들어낸 중핵은 경험 많은 늙은이들이었으니 말이다.


3. 민족이 존재하지 않는 나라


 한편, 그보다도 더 흥미로운 점은 몽골 울루스의 포함 범위다. 13세기 쯤이라면 근대민족이 발명되기 수백년 전이다. 하지만 그때에도 종족 개념은 분명히 존재했다. 그런데 몽골은 종족이라는 울타리에 대해서 별로 괘념치 않았다. 여진족이건 위구르 족이건 심지어는 말을 탈줄 모르는 한인들 조차도 그들은 얼마든지 기용했다. 남송의 붕괴를 앞당긴 사람이 남송의 군벌 여문환이었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여문환은 단순히 이익을 약속받고 몽골에 협력한 것이 아니라 자신을 인정해 주는 몽골에 감동한 경우이다. 몽골은 분명 위구르를 정복했음에도 불구하고 몽골 카한의 겔에는 위구르인들이 돌아다니고 이란은 분명 몽골에 정복당했는데도 불구하고 얼마 안가 몽골의 중요한 자리를 꿰어차고 있다. 국제화 되었다는 당보다도 더 국제화된 모습이다. 오죽하면 세계를 정복한 것은 몽골이지만 세계를 지배한 것은 이슬람 및 위구르 상인이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로 몽골은 정복당한 민족에게 관대한 모습을 보인다. 몽골 울루스는 몽골이라는 종족이 다른 종족 위에 군림하는 정복국가가 아니라 몽골이라는 핵심 종족이 다른 종족들을 몽골 울루스 안에 끌어들이면서 구성되는 공동체인 셈이다. 이것이야말로 강력한 정복군주 칭기스 칸 사후에도 백년 넘는 세월동안 예케 몽골 울루스가 존립할 수 있었던 바탕이었다고 생각한다. 피정복자들은 얼마든지 몽골울루스 안에서 지위를 얻을 수 있었으니 무서운 칭기스 칸이 죽었다고 해서 딱히 몽골 울루스에서 이탈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열려있는 제국, 이것은 훗날 등장하는 제 3제국이니 대일본제국이니 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성격의 것이다. 근대 민족주의에 익숙한 오늘을 사는 사람들로서는 이해하기 힘들지만, 인종 문제에 관한한 현대인들보다는 오히려 수백년 전의 몽골사람들이 진보적으로 보이기까지 하다.


4. 물자의 흐름을 지배하는 나라


 가장 재미있는 부분은 칭기스 칸때 그 모습을 조금씩 드러내기 시작하여 쿠빌라이때 확립된 몽골 울루스의 정체이다. 중원의 제국들이 농경지라는 면을 지배하는 제국이라면 몽골은 유통이라는 흐름을 지배하는 제국이라고 할 수 있다. 사실 상업국가라는건 새로운 현상은 아니다. 중앙아시아와 이슬람세계, 지중해세계에 이르기까지 교역망에 기반하여 성립한 국가라는것은 늘 있어왔다. 몽골이 특별한 것은 단순히 하나의 거점을 가지고 그 거점을 지나가는 교역로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형태가 아니라 유라시아에 걸친 광대한 교역망 자체를 장악해 버렸다는 데에 있다. 반면 사람 그 자체를 지배하는 데에는 몽골은 별로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몽골에 복속된 지역은 그냥 세금이나 제때 내면 족한 것이다.

 이것은 붙박이 생활을 하는 농경민족이 세운 제국에서는 생각할 수 없는 것이다. 농경제국에서 지배의 핵심은 곡물을 생산하는 땅을 장악하는 것이고 그 땅에 노동력을 투하할 사람을 지배하는 것이다. 땅을 지배하지 못하는 제국은 존립의 기반 자체를 잃은 것에 다름 아니다.

 그러나 이리저리 떠돌아다니던 몽골사람들은 땅에 울타리를 치는 데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다. 좋은 목초지에 대한 열망은 있지만 어디까지나 중요한 것은 목초지에서 나는 풀에 있는 것이지 땅 자체는 아니다. 아무리 좋은 목초지라도 이미 풀을 다 먹어버려 더 이상 먹일 풀이 없다면 다른 목초지로 떠나버린다. 이미 수확한 땅이더라도 다음 해의 농사를 위해 땅을 떠날 수 없는 농경민은 땅에 집착할 수밖에 없지만 몽골사람들은 굳이 땅에 집착할 필요는 없다. 풀을 얻기 위해 잠시 머무는 장소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사람에 이르면 이 차이는 더욱 심해진다. 땅에 사람의 노동력이 투입되면 곡물을 얻을 수 있다. 사람의 노동력을 쥐어짜면 더 많은 곡물을 얻을 수 있다. 그러나 목초지에 사람을 붙여놓는다고 해서 풀이 갑자기 무럭무럭 자라지는 않는다. 사람을 24시간동안 말 젖을 짜게 하더라도 젖이 더 많이 나오는 것은 아니다. 사람을 지배한다고 해서 더 많은 부를 얻는다는 보장이 있는 것이 아닌 셈이다.

 결과적으로 몽골은 그 어느 제국보다도 강력한 군사력, 즉 강한 강제력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강제력을 이용해서 사람을 지배하는 데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다. 몽골은 피 정복민의 종교나 사상에 관대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사실 관대한 것이 아니다. 피정복민이 무얼 하던지 간에 관심 자체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초원은 여러 가지 물자가 부족하기 마련이고 때문에 부족한 물자를 초원으로 운반해 주는 유통에는 관심이 많았다. 더욱이 물자의 흐름을 장악하는 것만으로도 귀찮게 피정복지를 일일이 조정하지 않더라도 부를 얻을 수 있다는 사실도 이미 알고 있었다.5) 그 결과 몽골은 유례없는 범유라시아적인 교역망을 건설해낸다.

 이것은 농경국가인 한국에 사는 나로서는 대단히 독특한 인상을 준다. 한국을 비롯한 농경국가에 있어서 국가는 거점인 성과 그 주변의 면으로 구성된다. 그런데 몽골은 면을 지배하는 데에는 관심이 없고 거점이라는 것도 일정한 지역은 아니다. 당장 수도라고 하더라도 하나의 도시가 아니라 카한이 순행하는 일대가 곧 수도다. 몽골은 흐름으로 구성된 제국이다. 굳이 점과 면으로 구성되는 농경국가에 비교하자면 선으로 구성된 제국이라고 해야할 것이다. 어쩌면 몽골은 면에는 관심이 없었기에 개방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는지도 모른다.


5. 세계사를 열어낸 나라


 몽골이 남긴 최대의 유산은 세계사의 등장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몽골 이전의 세계는 서로의 존재는 알고, 영향을 주고받기도 하지만 어찌되었건 독립된 세계들의 집합이었다. 그러나 몽골은 유라시아를 단위로 하는 역사를 쓰게 만들었고 몽골이 붕괴한 이후에도 역사는 유라시아 전체를 단위로 움직이기 시작한다. 유럽의 대항해 시대 이후 역사 변동의 단위는 유라시아에 아프리카, 아메리카를 포함하여 그야말로 세계를 단위로 하기에 이른다. 때문에 보통 세계사의 시작은 대항해시대로부터라고 이야기 하지만 사실 세계사의 시작은 몽골로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할 것이다. 전혀 다른 문명권들이 모여 하나의 단위를 이루면서 움직이기 시작한 것은 몽골로부터 기원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된 데에는 무엇보다도 사람들의 시야가 넓어졌기 때문이다. 전세계를 무대로한 전략이라는 건 몽골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몽골 이후 사람들은 세계를 경영전략의 단위로 인식하는것이 가능해졌다.


6. 마치며


 나는 이 책에 대해서 다소 불만이 있다. 이 책은 일본인 학자가 일본인을 위해 쓴 책이기 때문이다. 스기야마가 한국인들이 몽골에 대해서 어떤 이미지를 갖고 있으며 무엇을 궁금해 하는지를 알 리가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한국 독자인 나로서는 무언가 미진한 구석이 남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예를 들면 솔직히 나는 원구(元寇)의 어감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 그보다는 몽골이 고려에 미친 영향, 예를 들면 송골매라든지 하는 것에 보다 관심이 간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대단히 뛰어난 책이다. 한국(저자는 일본을 생각했겠지만)사회에서 흔히 알려진 유럽이 바라본 몽골, 한자로 기록된 몽골이 아닌 몽골 그 자체로서의 몽골을 그려내려고 노력한 흔적이 역력히 보인다. 저자 스스로도 인정하고 있듯이 아직 이 책의 내용은 완전한 것은 아니다. 여러 언어로 기록된 사료들을 모아서 연구한지 얼마 되지도 않은데다가 그나마 자료가 풍부하다고 할 수 없기에 생기는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자 자료에 의거한 원나라에 대한 선입견을 깨는 데에는 충분한 책이다. 몽골은 단순한 무력 지배 집단이 아니었다. 유라시아를 아우른 물자의 흐름을 장악한 집단이다. 그리고 그 흐름의 통제를 위구르인이나 무슬림에게 맡겨버릴 정도로 열린 품을 가진 공동체이다.

 예케는 크다는 뜻이며 위안은 역경의 ‘위대하구나 하늘이여(大哉乾元)’에서 따온 말인데 ‘영원한 탱그리의 힘으로’라는 몽골의 정형구에서 나온 것이다. 몽골은 테무진의 부족이며 초원유목민연합의 상징이다. 울루스는 나라인데 백성과 영토를 포함하는 개념이다. 세계를 아우른 몽골은 원나라가 아니라 예케 위안 몽골 울루스였다.


참고문헌

스기야마 마사아키, ꡔモンゴル帝國の興亡ꡕ(上․下), 講談社, 1996, 임대희․김장구․양영우 譯, ꡔ몽골 세계제국ꡕ, 신서원, 1999


1) 우구데이 이후 몽골 울루스의 수장은 카한으로 불렸다고 한다.


2) 보통 예케 몽골 울루스를 대 몽고 제국이라고 번역하는데, 울루스는 제국이라고 보기에는 어감이 좀 다르다. 나는 울루스를 공동체라고 번역하고 싶다. 그러나 예케 위안 몽골 울루스 시대에 이르면 명실상부한 세계제국이니 울루스를 제국이라고 번역해도 상관 없으리라.


3) 시호는 국강상광개토경평안호태왕(國岡上廣開土境平安好太王), 한국에서는 광개토대왕이라는 이름으로 유명하다.


4) 논리적으로는 천명을 받았기에 천하를 평정하는 것이 가능한 일이다. 물론 이는 사후적(事後的) 논리에 가깝다.


5) 몽골 이전의 수많은 유목국가들이 중원으로부터 뜯어낸 물자를 서쪽에 팔면서 수익을 얻은 선례가 있다.


by 감자부침개 | 2008/11/03 13:06 | 창고를 채우는 이야기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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